> place_ Star tower 34층 집무실 > connector_ 박종흠 + ? (누구?) > members_ 김성우, 방경민, 신동현, 박정윤 녹음하지 못해서- 놓친 부분이 많네요. 왜곡된 부분도 있으리라.. 같이 참여하셨던 분은 잘못된 부분 고쳐주시고, 빠진부분 덧붙여주세요. * 인터뷰를 정리하다보니- fact중심의 문답만 있어 아쉽. 본인이 자신에 대한 부분은 많이 드러내고 싶지 않으셨던듯. **************************************************** 약력 >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졸업 > 한국 과학 기술원 전산학 석사 > 1992년 삼성 SDS 입사 > 1999년 네이버컴 대표이사 사장 > 2001년 NHN 공동대표 이사 사장 > 2004년 NHN 이사회 의장 겸 CSO (전략 임원) 부사장 현재 NHN은 검색포털 서비스 네이버와 한게임 외에도 어린이 전문 포털 쥬니어 네이버 등 각종 콘텐츠와 게임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디어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 등 해외 시장에 진출 하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intro. 이해진 부사장은 본래 삼성SDS 사내 동아리에서 출발한 검색엔진 개발을 시작으로 1999년 (주)네이버 컴을 설립, 현재 국내 No.1 인터넷 검색포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NHN으로 이끈 리더이다. 사무실에 찾아온 MS를 보시더니 약간 당황한듯. 머쓱해하셨다. 자리가 꽉차니까 약간 불안해하는거 같기도 했고... NHN이 젊은 기업이고 직원들 대부분이 편안한 캐주얼 하고 있어서 그 또한 편안한 복장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셔츠에 넥타이까지 하고계셨음.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푹 쉰다 면서 항상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했지만, '1위어야 한다'는 미션을 항상 가슴에 품고 회사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모습였다. 플러스, 인터뷰 내내 '검색'에 대한 신념과 열정은 개발자로서나 사업가로서나 변함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질문시작 Q.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개발자로서 사회 첫 시작을 하셨습니다. 그 후 사업가로서 회사를 일구어 내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면 무엇이고,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원래 사업을 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개발자라기 보다는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이지만. 그렇지만 아직도 사업가의 자질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몰겠다. 사람이 오히려 잘 안되더라. 필요한 경우에 읽었던 몇몇 경영서들은 책장에 꽂혀있다. Q. 1위가 되기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습니까? 나는 검색 솔루션이라는 회사가 가진 기본적인 아이템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마케팅도 약했다. 그러나 덕분에 오히려 본질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CEO가 빨리 된 것이 문제였다. 조금 더 많은 것이 갖춰진 상황에서 되었다면 더 쉬웠을 거다. 경쟁은 게임과 같다. 게임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1위는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닌 상대적인 위치다, 다음 물결에 대비하여 타임라인을 잘 짜야 한다. (전쟁에 비유한 것도 있는데,, 가물가물) 그래서 고민거리는 끊이지 않는다. 산넘어산... Q. 본질이라면? 검색솔루션으로 시작한 회사이다. 디지털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정보가 곧 권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정보화 시대는 누가 얼마나 가치있는 정보를 찾아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이다. 유용한 정보들이 한 곳에 머물러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지금도 많은 지식들이 도서관에, 또는 지면에 갇힌채 매장되어 있다. 네이버에는 '정보의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데이타 베이스가 존재한다. 이는 사회에 기여하는 면이 있어 보람이 있다. 요즘엔 게임에도 보람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Q. 회사설립 초기인 99년에는 벤처붐 시기와 닷컴기업에 대한 회의 등 사업환경이 안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첫째 운이 좋았고, 둘째 좋은 분들을 잘 만났던거 같다. SDS에서 독립해 나올 때도 그 어려운 시기에 펀딩 잘 받을 수 있었다. 같은 때 다른 벤처들은 투자를 받을려면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한게임/서치솔루션과의 병합은 좋은 결정이었고, 뒤이은 한게임 유료화 성공 등 여러모로 타임라인을 잘 밟았던거 같다. Q. 운 말고도, 리더쉽/ 비전 등의 사항이있을텐데요.,, 카리스마는 나와 멀다. 그래서 'Good to Great' 에 감명받았다.(웃음) 성실함을 바탕으로 한 신뢰가 중요하다. 대화나 행동을 하더라도 끝에 신뢰가느껴져야. 또한 Win-Win을 추구한다. 양보가 오히려 더 나은딜인 경우도 많았다. 마음을 사기 위해서 손해도 봤다. *참고: 'Good to Great'- 위대한 기업에서는 흔히 생각되는 카리스마가 있는 강력한 리더보다 오히려 수줍어하고, 나서기를 싫어하고 조용한 리더가 많다고 함. Q. 공동대표체제에서 단독체제로 전환되면서 개인 생활에 달라진 점은 무엇입니까? 공동대표체제는 오래 갈 수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다. 사람들을 대하는 거나 골프를 치는 건 김범수 대표가 낫다. (기타 둘이 서로 말이 워낙없기 때문에 직원들이 다툰 것으로 착각한 적이 있다는 등.. 이야기함, ??? 덧붙여주셈, please.) Q. NHN은 동종업계에서 연봉이 높기로 소문나 있다. 그만큼 보상에 신경 쓴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사람마다 다르다. 자식에게 물려줄것도 아니고, 직원들이 잘 일하는게 좋은 것이다. 인사고과나 직무평가에 있어서 좋은 룰을 만들어, 기여도에 맞춰 보상한다. Q. 대기업에서의 근무경험의 장단점은? 삼성에서의 경험이 좋았던 아니던 기업을 경영하는데 많은 참고가 된다. 낭비가 아니었다. 잘되는 회사는 기업문화가 다르다. (기업문화에 대해 언급한것중 무엇이 있었나요??) 그 축적된 'know-how'를 배웠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을 할 수 있다. NHN이 삼성 스타일이란 말이 많다. 이것은 지금 임원들이 다같이 SDS에서 시작했던 영향도 있을 것이다. Q. 창업에서부터 지금까지 테헤란에서 벤처기업들의 흥망을 지켜보셨다.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이었나? 국내 기업들은 내외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내적 한계로 사업에 있어서 '정서적'인 것을 중요히 여기는 것을 들 수 있다. 기업의 내실을 다지기 보다는 인간적인 것에 크게 의존하다가 그르친 경우가 많다. 외적인 한계로 좁은 국내 시장 규모를 들 수 있다. 큰 돈을 들여 좋은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수요 인구가 적어 시장규모가 안나온다. 따라서 해외 진출하여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필요가 있다. 왜 아직 성공사례가 없느냐? 능력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 뛰어난 인재가 미국만큼 많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기업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미있는 기업들이 나오려면 서로 양보하고 조금은 희생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인터넷/ 소프트 웨어 사업은 브랜드를 파는 것이다. 더이상 좁은 시장에서 작은 파이를 가지고 경쟁할 필요가 없다.(한게임과의 합병을 얘기하는 것 같음) * 이런얘기도 하셨음_ 어디에 붙이지? 검색 알고리즘은 전세계적으로 3개 밖에 살아 남을 수 없다. '네이버'의 알고리즘은 타 검색엔진과 차별된 검색결과를 보여주어 현재 일본에 진출해서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 Q. 문제를 해결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어떻게 하시나요? 논리를 따른다. 엔지니어다 보니까 막연하게 문제를 해결한다기 보다는 문제에 접근할 때에는 프로그램을 만들듯 알고리즘을 짜듯이 한다. 그래서 엔지니어가 성공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Q. 멘터가 있나요? 지금 현재에는 특별한 누구를 멘터로 삼고 있지 않다. 예전에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멘터로 생각했었으나, 그 또한 강점 외에도 약점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고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Q. 시간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특별히 시간관리라고 하는 것이 없다. 자로잰듯 시간을 쓰진 않는다. 다만 일할때 일하고 쉴때 쉰다. 잠이 많은편?(이라고 했었나요?) 강박관념을 가지기 보다는 마음에 여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휴식시간에는 주로 어떤 일을 하십니까? 주로 명상책을 읽음. (이부분 보충요- 기억이 하나두 안남. 특별히 하시는일이 없다고 한듯...) Q.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당부가 있다면? 경험을 살려 기획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또한 매니아적인 것들 가지고있어야! 일에 대한 열정을 가져라. 20대와 30대 초반까지는 무엇이든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야구에서 '4번타자'같이.(이거 해석쫌 -_-;;) 환경 탓할 것이 아니라 하물며 복사를 맡더라도 누구보다도 깔끔하게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해야 한다. 그럴 수 있어야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도 프로가 될 수 있을 것. Q. 자녀들을 교육시키실때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싶으세요? 영어를 잘해야한다. 이것은 그저 영어점수가 몇 점, 이런 문제가 아니다. 네이티브 수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훨씬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Date: 2004년7월 27일오후 5시
Interviewee: 김영세Inno Design CEO
Connector: 김동신
Interviewer:김동신, 박정윤, 박종흠, 이화섭, 천정하
사거리의건널목에서정하를만나서화섭, 정윤과이노디자인의건물(건물이꽤나특이했음– 입구찾는데살짝고생)에도착하고, 엘리베이터를기다리는도중, 문이열리자마자보이는김영미이사님과김영세대표님(두분성함이비슷해서잠깐친족에대한루머(?)가돌긴하였으나, 뒤에아니라고밝혀짐). 회의실로안내되었는데, 분위기부터역시디자인업체는다르다는인상(무엇보다화장실입구가다소부담스러움– 슬라이드형도어라니!!)
잠시후종흠형도착, 김영미기획이사님과따듯한손길(?)을주고받은후(종흠형의해맑은센스포인트 +100점기록), 김영세대표님과김영미이사님과함께인터뷰시작. 태극무늬잔세트에담겨온음료를마시며이노디자인업체에대한설명을하시고, 김영미이사님으로부터이노디자인프로모션(;;) 동영상과제품라인업등에대하여설명을들음.
인터뷰와강연의중간형태로내용전개. 현재이노디자인은미국지사쪽에만제품디자이너가 25명정도, 한국지사에디자이너가 15명정도이며웹디자이너 2명, 비쥬얼디자이너(이부분은못들어버림) 등으로구성되어있는총규모 50인정도의회사– 디자인업계에서 50인규모의기업은상당히큰편임. 미국에서 20주년, 한국에서 5주년된기업.
김영세대표님은본인이디자인교교주이라고지칭하시며, 디자인이우리를지배하고디자인은마술이자, ‘제대로된’ 디자인은‘아주건전한’ 마약이다라고표현– IMC(Inno Mania Club)에대한이야기에서 MS의스폰서(?)에대한아이디어(?)를잠시… ;;
디자인사업을하면서느낀점:한길을파되, 얼마든지확산될수있는길을보았다. Design A to Z – 모든영역에있어서디자인의연결가능성을느꼈다.
좋아하는말中: “가격경쟁력으로성공할수있는회사는각분야에단하나다” – because 제일싸야하니까
사업을하게된배경과 Inno Design에대한시작이야기
진로의결정: 16살때디자인에대한감을잡고시작. 어머니아버지께설득이힘들었음. 부모설득몇년, 배울게없던대학…
Inno 로고: 1979년~1981년 (빼앗길까봐그린후, 바로지갑에넣음 - 7년간보관) - 7분만에만들어진 CI 작업
바로써먹지못한이유:자신감부족 + 계산 (“때가아니다” – 사람은누구나때가있다by 때밀이– 유..유머)
창업: 1986년
느낀점:자신의 drive는버릴수없다– 하고싶은일을참는다는것은매우힘든일이다
INNOVATION: Inno의로고는사각, 삼각, 동그라미의조합 (본인이좋아하는기하) – family story: 식탁위의냅킨, 접시, 나이프로둘째아이가 inno design – design makes the difference라고외치던모습을보면서흐뭇해하심
본인이회사를그만두고스스로의사업을하게된계기
Design은 new paradigm, 내역량을발휘하기위하여는기존의기업에있다가는제한을받는다
할일없을때 creative 해진다
태극무늬
우연이다, 특별히애국심그런것도아니고… 빨강파랑은 no thanx; 곡선과직선은예쁘다는생각– 직선의강직함과곡선의유연함이한국이다? 그리고 Inno의로고와통한다라는것에서시작. 원칙으로는 1) 칼라를넣지말자. 2) 태극의 full line을모두넣지않는다.
ACME 등록
오리엔탈중최초– Frank Lloyd Wright 등과같은라인에서전시
타겟고객층
Inno의타겟의‘상위의개념’은 money-base가아니라디자인감각-base으로서의상위 3%?
Cf>루이비똥: 4-billion dolloar, 마진 30%; 그중한국, 일본이 70% - 문화에대한기만? 사람의심리를 hurt하는비즈니스다– 착각을유도? 있는사람의착각; 없는사람의불쾌(질투); 루이비똥 150년의역사(결국 150년전에는가방회사였을뿐이다) – 제품-base & 이미지-selling – 장사는된다, but 생활에득이되지는않는다; 내가보는디자인의힘은“인간의생활에도움”이되는것
Unexpected하면서가치가높은것으로향하는것이바람직하나, 대부분의기업들은안정적으로나아가고자하기때문에시장의벽에도달한다. 이러한것을디자인을통해서혁신을시켜나갈수있으며이방향은 open-ended되어있기때문에가능성을갖는다. 시장자체는그러한혁신을쫓아가기때문에시장의벽도함께성장하며, 그러하기에계속적으로디자인을통한혁신이필요하다.
중국디자인업계의모방문제
Copy Cat 문화는 inno의비즈니스에크리티컬하지는않지만, 전반적으로문제가될수는있다– 문화적자존심? (김영세 chart의) Left-bottom 박스에서벗어나지못하는것이다
제대로된디자인이란?
아름답고(눈에띈다), 쓰기좋고(만족), 만들기쉬운(싸다) = 대박이다
Functionally easy-to-use, esthetically beautiful, easy-for-manufacturing
명품에대하여…
명품이라는단어에대한거부– 사치품이다
영어로명품은– masterpiece vs 사치품– luxury item
도움요망(;)
byinnoclub 멤버가되었으면좋겠다; inno라는브랜드를사랑해주기를바란다
specialist vs generalist - 비중을둔다면? 디자이너로서는? CEO로서는?
Specialized generalist, generalized specialist
현업에종사하다보면모르는게없어야한다 (예: 화장품업계– 요즘유행하는컬러는?) – (조모교수에대한비판 ;;;)
디자인이라는분야가너무어렵기때문에쉬워보인다
Artist + business savvy + 순발력 + 농력 + 통달한커뮤니케이션능력 + 예언가 + 발명가 = 레오나르도다빈치
어릴적이나인생전반에걸쳐서본인에게가장큰영향을미친책이나이론, 사상혹은인물등이있다면소개를 - 정신적, 실체적멘토의발견
레오나르도다빈치– the only mentor (500년전낙하산스케치에대한일화)
취미
노래, 골프
디자인하기가곧취미(편안해짐; visualization)
클라이언트의거부대한본인의시각
다시해와라, 다시해와라를안해가지고여기까지오는데오래걸렸다. 이러한거부에대응하는일을해야만빨리 business가진행되는데…
미국과한국에서일을해보시면서느낀차이점 - 예) 시장전반, 직원들성향이나디자이너의차이, 사업에미치는문화적영향의차이등
미국회사: client가일요청하는것을받아서해준다– 따라서, table의주체를우리로돌릴수있다.
한국: 한국은디자인을활용하는방식이형편이없다. 처음부터될성싶은회사에요청을해야한다.
불행중다행이미국에서사업을해서table이 client에게로돌아가있는일이없었고미국에서 recognition을만들어서한국에왔기때문에, 한국에서도비교적수월하게일들을진행할수있었다
“디자인은컨피던스를파는거지니고시에이션을파는게아니다”
디자인회사는의사고, 찾아오는회사는환자다– 한국은환자가의사에게따지는꼴
본인의사업/성공에있어서학문과현장의경험에대하여각각비율을매긴다면어디에얼만큼씩...
모두필요하다 -> 어떤분야에서든지…
AIESEC에서의 활동에 대하여 잠깐... LC로 네덜란드로 시작 NC로 활동하면서 사람들의 경영에 대하여 익히게 되었고 AIESEC International로 가고 글로벌 스케일의 사람들의 경영에 대하여 익히게 되었다 당시에 Global President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18분간 알선하였었다. Q1) What is the major difference between Korean people and the other countries? A) It's a very broad question. Let me just talk about things that immediately comes to my mind. It is quite unbelievable and extraordinary how quickly this market has developed to the level that it has. I mean \$10,000(US) per caput, GDP is quite an enormous achievement in that short period of time. Still a long way to go. It still a third off of that of the European and Western countries. So, how is that gonna happen? Here, the president of Korea talks about achieving \$18,000 at 2010. In the next number of years, they will try to get to \$18,000 and you wonder how that's going to happen. What has happened over the last decade or two, is probably not very sustainable. It is probably not the way to achieve the next big leap. Because if you think about it, I think the courage and duration you guys and younger have a very different work ethic to what your parents used to have. It's quite normal and same with me. Your work ethic is no longer all that different these days from other countries around the world. Whereas your parents had a work ethic which is quite different. Your parents worked day and night. They would do anything, anything to advance themselves and their children. You guys and like me, I mean we spoiled him. Let's face it. I mean, we got it all, we live in nice house, we wear nice clothes, we are getting good education, and we have to do that freaking military service(laugh), and all sorts of hassle that we have to endure. But apart from that, life is pretty good. And we are prepared to work hard but I mean there is a limit, whereas your parents had no limits from what I gathered. They went, zoom, that way. So, one is about drive energy and enthusiasm that your parents used to have which this generation probably does not have to the same degree. The other thing is, because Korea had no where to go other than advance, your parents and the rest of the population was very united in choose of 'that is what we want to achieve' and all of everyone went in that direction. Whereas today it's a little bit more difficult, because people are better off, different interests, different opinions, different agendas, and all kinds of things. So people are not as united as it used to be 10, 20 years ago. Apart from the whole cheabol concept which is not gonna work anymore. Now the majority of the top 10 cheabol companies are more than 50% foreign owned. Because they are all enlisted(?) as public companies. So this sort of things are still hapenning now days with SK Global, and even SamSung which is laying out its credit card unit. That must be the last time they can actually do that, because the next time, the investors are gonna punish them. They are gonna say "Right, if you do that, I do not want to hold any shares of SamSung." And they are gonna sell it at all costs, and share price will significantly hurt from that. So, it is gonna be the last time that SamSung can do that kind of trick and SK can do that. So, that was the model that was build before that. People that were incredibly motivated. Everyone needed the same sort of direction, cheabols which is very very powerful and it could manuever a cash around to fund what was acquired and not necessarily you have to look at the profitability every single unit on its own. Thirdly, you had a government which was not a democracy, let's put it that way, and therefore it could suppress where necessary, any sort of public unrest or unsatisfaction. So it could ensure that it was their direction. Those are the four key ingredients that made Korea move as fast as it did. None of those, none of those will be able to replicate that next ten years. So, what I'm puzzled about having arrived here relatively shortly is how is this country going to do that? And it doesn't seem to be a very clear agenda other than a lot of ambition. Korea has a lot of ambition. It wants to be the largest hightech country in the world, Pusan wants to be the largest hub, Asian harbor in Asia, Inchon wants to be the biggest North-Asian hub for air transportation. And it is a big ambition, right? Seoul is looking to become a major, if not the biggest, financial center in Asia. Singapore and Hong Kong are streets ahead, but Seoul, it got it in its mind that it should be realistic. I mean, no one lacks ambition here, but I am concerned that it might be based on what you guys had done before. I am not sure whether it is based on a realistic understanding of what it is that is gonna deliver that, is gonna achieve. That is my macro observation. Q2> Which parts should be improved and revised in the prospective leaders of Korea. An advice for us. A> I found so far, relatively limited conceptual and strategic thinking capability, in my business. And I find that everyone in my organization well educated, seriously, very well educated. A lot of people have been abroad, like you. Mostly in the US, a little shown in Europe. Well educated, there's no shortage of that. But the biggest gap I find is the ability to conceptualize, the ability to strategize, as opposed to 'just do', and do things with incredible ambitions and run. That's not a wrong thing, nor a bad thing. But it seems to all be based on 'let's make stuff happen today', 'and if we do lots of stuff, something will work'. As opposed to being a little bit more smart about it. What do we want to do in 5 years term, what do we want to do in 3 years term. What are the steps we need to put in place to get there. So, that conceptualization and strategizing is not really there. That's the key part. People work very hard still, even in my office now, there are still people here. And I ask them "Why are you doing?" "Why are you in the office at 9 o'clock in the night?", maybe you guys, gamers do that, because you guys are sort of like creative bunch, right? You have to work at night, but normal people, which not gamers necessarily always, you shouldn't be here at 9 o'clock, you should be with your friends, with your family, with your kids, whatever else, right? People want to work, they are still quite ambitious, which is a good thing as long as you can channel it appropriately. Q3> How are you helping your co-workers develop themselves in your organization? A> By putting in a couple of disciplines, things that weren't around here. We do the usual in terms of every year, we set objectives and we do performance management appraisals in the end of the year, and we write development plans even. But development and learning is not once of the year type of activity, it's an everyday activity, right? So what we are moving toward is a process that happens throught out the year. Where by a couple of things, you set your objectives, if you do that, align with the business plan, you do that to be smart in terms of simple, measurable, achievable, realistic, and time bounded. They have to be smart. Then what we do is, on the basis of the performance appraisals, we create a development plan. The development plan has a couple of different elements. It has got elements of self-reading, or self-learning if you'd like, it's got elements of coaching from other people, it's got elements of feedback from a broader group of people, and it's got elements of 'maybe' formal training. I am not a great believer of a formal training. I don't believe that you can one day work in an office, work with people, work on whatever you do. And then you go to a training course for three days, and you come back and do personals. And all of a sudden you are gonna do all that. I don't believe in trainings, I don't think it works. I think what happens what happens when you go to a training course, you say to your husband or boyfriend or whatever else, and you say "I'm going on a course". And on Monday, "I got three days, really nice." You walk up there, you talk to all the people there. He listens, very interesting, very cool. You have nice lunch, you have nice evening, you have some drinks with everyone, you stay over or you go back to your house. And you got three fantastic days outside the office. No stress, no obligations, no accountabilities, and it's really interesting. And none more than that. So you come back to into the office, "God, I gotta do all this and all that" And starts up, "Training? What was that about? Uh.. Whatever, I'm busy now" See, you got everything that you have 'supposedly learned'. So, I'm not a great believer in trainings and so which is why I put a lot of effort into creating development plans which are about coaching and providing feedback to people. Because I do believe that training, learning is what you do on the job. And it is about getting the people to help you, to support you, to provide you with the tools to do what you need to do. And that's called coaching. So, we are putting in place, something that you guys are(n't?) doing, used as a same word, a 'mentoring system', for a slightly different purpose. We haven't done this yet, but we are looking to do this in April or something. To provide, to make sure that everyone has got a mentor within division, which is not their boss. And they meet, go for lunch, or go for dinner, or whatever. Meet in the office in the meeting room, every week. To review what they are doing, and how they are getting over that. So, we are looking to provide coaching and feedback sessions to people where by we train. Maybe there's gonna be one outside trainer who's gonna be here. And we are just gonna do what's called 'ball-place(?)'. You and I are going to sit down, and I am going to provide you with feedback. And you are going to experience how it is to receive feedback. And you are going to provide feedback to me and I'm going to experience how it is to do that. And we are going to learn to do different views, different tools to provide feedback to each other. It becomes very constructive as opposed to challenging. Because if you provide feedback today, then I start to feel a bit defensive. But if you start to come from the same perspective, in terms of what you both have gone through. A number of role plays will buy you understand(?) what this is all about, then feedback becomes very nice, very good. Because we all like good and bad. We all like to learn. We all like (?) ourselves. And feedback is an absolute key to everyday to be able to do that. It's very difficult in a Korean environment. Because Korean environment is so cofucianist based. I mean you talk about being a senior to... (laugh) That we don't do that here. We try to limit that, reduce that. There's nothing wrong with it. It just doesn't work in a sort of an envrionment that an American company like ours is trying to be, also in Korea. So it doesn't work. I've just promoted someone who, is now become my technical director. He's by far the best guy in that team. His main concern was that he would have two people reporting into him who are his seniors from studying. The guy is, he's 46 himself, and those two other people are 53. I've just arrived in the country, I didn't know. What's the big deal? What is this all about? You are clearly, and they would even admit to, that this guy is a lot more capable than they are. That sort of thinking cannot work in an American company, cannot work in the sort of environment that we want to create. Because it's not about how senior you are, how many years you've got. It's about what worth you can do. It's about how good you are in terms of achieving and in terms of how you achieve with people. I'm 36, and in the Korean business I could never do what I do, ever. 36? Everybody would resign! Yet I can do what I do here. I can be very effective to Coca Cola company. Things I'm doing quite a nice job and I will hopefully be able to do that for the next 3 years. So it's not about age, it's about ability. So, that what we are looking to break through, with coaching and feedback sessions where by we start to have actually honest coversation. * Light went out * Q4> Are there many Korean women working here in Coca Cola? A> At least 50 50 in the office. The marketing cells. Cells in distribution and delivery are men. The majority of our manufacturing are men. Blue collar is very much men. The marketing office is pretty much 50 50. Personally, I prefer working with women. (Sorry guys ;)) I found that conceptualization and strategizing skills, women are far better. From the personal observation and I truly believe that. I came from Holland and Holland is very liberal. The economical system works nicely. Q5> Tell us about yourself. A> I was born in Holland. In a small town. My father worked at Philips. Every two or three years, we moved to different cities. Then we moved to Sweden. Then my parents moved to Mexico. And we joined them for a while. ... Continued my studies in Holland. Bachelors degree and Masters degree in Holland. In between worked for AIESEC and NC. Cameback and finished my studies. Hated studying. (laugh) I did Aero Space Engineering. Mathematics and Physics all day long. And I found it very very boring. Did bachelors also in business administration and masters as well. I started working for P&G. I wanted to work and study at night. Work as a normal 'brand assistant' at marketing department at P&G. Finished MBA not before a year. Because I had done AIESEC at a high level, all these companies used to know me. So, I played them. They wanted to interview me. I am not really into interviews, you know me already. You've worked with me quite a bit. If you've got something to say, just tell me. So, UNILEVER said "Okay then, we'll offer you a job without an interview." I was already working for P&G. UNILEVER was quite interesting with few other options. I joined UNILEVER. P&G is the arch-rival of UNILEVER. I was in the detergent business at P&G and I was moved to detergent business of UNILEVER. They sent me to Spain to change my mind and I came back and said "I still want to go to UNILEVER". I had to leave on that day. UNILEVER provide non-structured path compared to P&G. In P&G, year one, you are a brand assistant, in year two, you can possibly be promoted to a marketing assistant, then you become a brand manager, then a marketing associate, but by the time you become a marketing assosicate, you will have worked here at least for a six or seven years. UNILEVER is about ability. If you can take the responsibility, we'll give it to you. We'll give you more as much as you can take, we'll develop you. I joined them as a brand assistant, on dish wash liquid. Dubro, I worked on that brand for a year. I was very busy with dish wash liquid. I had a whole portfolio for a dish wash liquid and a machine wash. I had three brands. I had a team of people on year two when I was there and I started to take on more responsibility. I ended up after three years, running all of the house holds cleaning products. The whole division of UNILEVER. I didn't like UNILEVER that much. Not fast enough, not entrepreneurial enough. So, I wanted a bit of a challenge. My previous boss at UNILEVER had moved to Coke, and he told me that "In two years time, I'm going to give you a call, and we are going to have to talk, about you coming to join Coke". And he did. He called me and said "let's have lunch and let's talk". He had become the marketing director on Coca Cola on Holland. And he told me about coming to join them. He did put me in the official interview process through head hunter and I had to meet with people in London and fly down to Atlanta to have the interviews. I was convinced and these guys were going to pay a bunch money and I was going to do a nice job. I said "Why not?" I worked in Holland as an assistant - we call it 'the bag man' - you carry the bag of the boss. He was the division president for Northwest Europe. So he was the boss and I carried his bag. I travelled around, you sit in every meeting, you get to know everyone there is to know in our business. It was a fantastic opportunity and I did that for 9 months, as the 'bag man'. Then they sent me to Indonesia, so I worked for the marketing director of Indonesia for three years. My wife was working for ABN AMRO as an investment banker. I was 28 years old. No children. We arrived there(Indonesia) on December 1996. The economy was going up. We were having discussion about 'why we are growing only 40%?' 60%? 100%? What are the barriers? Can we overcome those barriers? A very good question. However the Asian currency crisis hit. In Korea, in Thailand, in Indonesia in that order. In 1997, we went on Christmas leave to Holland. Then, 2,400 Rupiah was 1 dollar. We came back on January 10th, 15,000 Rupiah was 1 dollar. 6 times devaluated. We had a business plan before we left. We tossed it out the window. We had to start over. Prices were going sky high and the inflation was enormous. So I had to completely redevelop a business plan. P&G closed and UNILEVER lost about 50% of the business and we lost about 10 ~ 15% of the business. Learned incredible amount from that business. Did that for three years then moved to New Zealand as a country manager. It was my first general management experience. We start working with the local team from NZ since it hasn't grown for a while. We started putting in some strategies and some people to it and extended the region to include all the Pacific island as well. And ended up being the managing director for the Oceania. Wonderful places like Tahiti, Figi, etc.. :) And this is my next step as a general manager. Now the challenge is to prove that I can do that on a bigger business. A far more complex market. The economy is against us. Number of health concerns. We made number of not-so-smart decisions over the last couple of years. It's quite a challenge. So, that's me. I got three children. We had first one in Indonesia and she was born in Singapore. Five years old now. Two boys in New Zealand. They are three and one. All blonde. Q6> How do you manage your time? A> Set priorities. Work and family, and most of things are not. Which means that I am prepared to sacrifice TV - I never watch TV, ever, other then the commercials that we need to see -, I don't spend enough time with friends. You make choices, it's tough. For me, those choices are pretty clear. I'm quite happy with those choices. And you have to be very discipline. I wake up at around 5 ~ 5:30 in the morning. I start to read. I read business stuff. Magazines and newspapers. I don't read many books. At 6:15, if we're lucky, our children wake up. The day starts and we'll get on a shower and everything else and we have breakfast. At 7:30 I drop my child off at the bus and I go to work. I'm here at 7:45. I start to work at 7:45 ~ 7:50. During the day, the emails are phenominal, particularly here in Korea. I get like 150 emails a day or something. I can't figure out a way for my secretary to do some of them, so I'm still doing all of them myself. So, I start the day by having my agendas cleared and priorities cleared for the day. Then I do my emails, that's like 8:30 or so. Make sure my preparation is done for the day. My day is pretty full with meetings. I always try to have like half an hour or an hour in between meetings. So I can do phone calls, so I can do emails, or I can do further preparation for any of the meetings. So my day is meetings. I talk all day. Everyday. I don't do much other than talk. I make sure that I do all the meetings and all the smaller things that I need to do. I actually have an hour or two to actually think about some of the bigger things that I need to be working on or thinking about or initiate. Korea is pretty easy, because everybody goes for lunch. 12 o'clock everyone goes, 1 o'clock everyone comes back. So that works pretty nice for me, because I don't go for lunch. I'll use half an hour before, and an hour, and half an hour afterwards. So, it's a good two-hour block to think. So I have my lunch, I have a coffee, there's no one around, very quiet, nobody bothers me. Nobody comes in or wants to talk or whatever else. So, it's time to think. And then the service starts again, the meetings, phone calls, emails, and people coming and etc. There's always in a day, I would spend about 75% on all the small things and 25% on some of the bigger things, but I try to maintain that space. I go home at 6:15 everyday, because I want to see my children. I'm at home around 6:30 ~ 6:45. I put my children to bath, take them out, dress them up, read them story, put them in the bed, and do most often, have some dinner with my wife. Then open a laptop and work or read things. Or come back to office like tonight. I forge(?) to live relatively close by so that I can do that which is a choice you make, again. I don't want to live far away in beautiful Kangnam. Because if you do that, you can't do this. So, you make choices. On the weekend I don't work. Weekend is my family time. There will be rare occasions that I do have to work, some months of during the year. But when I do work on weekends, always limit that to one day, so I'll have the other day with my family. You have to focus. I'm pretty intense on what I do. When you work, you work. When you are home with your family, you are with your family. So I'm not gonna even think about work when I'm with my family. Because there's no point. The worst thing you can do, I think, is to become really feel guilty when you are at work about not having seen your family, and start thinking about work when you are with your family. You gotta choose, you have to give up things. All of us have to give up things. I would like to probably spend a lot more on sports. And I try to, and I do pretty much every Sunday. I'd go to gym or go cycling on river sides. And cycling I can do now with the kids as well, so you can combine things. So, board the bike with a trailer, and the children can sit on the trailer behind the bike. Now, Korea, there's not a people doing this, so I have a lot of people looking at me when I do this. And you can go for about 30 or 40 k on the river side which gives me a good exercise, a good work out. And my children love it, because it's my dad, it's special. Q7> What motivates you most? Money? Fame? A> Money is important. Let's not deny it. I want to live in a nice house. I want to be able to have a good car. I want to be able to not have to think about whether I can afford to do somethings. And that's the sort of the things that we all want to. I don't necessarily need to be rich. When you get rich, which I'm not, you start to worry about all these things, when you have two or three houses, you got to maintain them. You worry about your house and whatever, your car.. becomes more of a hassle. So I don't need to be rich. But money is important. What's also important is growth, in terms of money. More so even than the money, I just to see the money to become more. Because when the money becomes more, it means that I'm being valued and I'm being rewarded for what I do. I couldn't tell you how much I make now. I don't actually know. I have to look it up. So it's not that important. What is important though, every year I see that "right, I get so much more, fine" "I'm on the right track still" "I'm still being pussy valuable" so, that's important to me. Then I don't look at it for a whole year until next year (pretends to look at the contract) "ah, okay. We're still in business, right?" Money is important. What's pretty more motivating to me is, we do a test every year. I'd just done it again. We are gonna see the results in two weeks time in a meeting in Sydney. We look a circumplex of personal styles, behaviour styles. Circle which talks to 3 different basic behavioural styles. Red styles - Aggressive styles, Green - Dependent styles, Blue - Desirable: Encouraging styles, self-actualization type of styles. This is based on a theory by a company called Human-Synergistics, and they've done this in 25,000 companies. Within these basics styles, they got a number of different, specific attributes styles that they can identify. My profile is very red. Very aggresive, highly competitive, very perfectionistic, very much power, all that sort of bad things. I'm no green, none. I'm not dependent, I'm not waiting for others to make decision, I'm not asking for recognition, I'm not asking for any of these things. I'm not green. I'm some blue, some not. Some very high on achievement, also very high on self-actualization. I'm not so high on encouragements and affiliative styles. I need to work on some of these styles. What motivates me is achievement and self-actualization. I do like bit of recognition for that as well. I actually like the challenges that I'm doing at the moment. Both from business perspective as well as from a cultural perspective. How awesome is it to be working when you are a Dutchman to be working in Korea. It's fantastic. I don't think I would like to continue to live in this country, in this place. Three years, four years will be enough, I would like to move on by that time. It's not my country. But three or four years would be awesome. I get to know... you guys, and I'm going to a language course. I'm going to do a crash course in Korean for two weeks, full time. Very intensively. So I'll be able to speak Korean in a couple of weeks time. I'm not a reader. So I'll get to learn a little language. You get to eat different food. You get to work in a completely different sort of culture. I really like the cultural perspective as well as, I would really like to put this company back on track. In three years time, we will be the largest beverage company in Korea. I have no doubt about it. Call me arrogant. I probably am a bit. But we will be the largest beverage company in Korea. And that's exciting, really exciting. That's actualization, that's about achievement. I have some ideas on how we are gonna do this. I won't be able to do it on my own. It's a matter of doing this with a group of people. So, that's very exciting I find. With NCsoft, we are putting together a program which will be launching in March. Where by people can get online music and online gaming experience through Coca Cola. It has never been done in the world. And Korea is the market to do it because everybody got high-tech phones and 70% are on broad-band internet. So this is the place to do it. So this is the place we are jumping on. Coca Cola is a huge brand. Coca Cola became big through marketing, throughout the decades. Marketing went from bill-board advertising in the US in the 1920s and the 30s. The company had in the US, 600,000 bill-boards in the US. Can you imagine that? That was the medium to be communicating on. Bill-board advertising was developed by Coke. Then the radio came. Radio advertisement was pioneered by Coke. Then black and white TV, 1950s, Coke pioneered TV commercials as we have them today. 30 seconds or 45 seconds, and Koreans happen to be 15? Then the color-TV came and brought a whole new spectrum to that. We think, I like to think, that the gaming will become the next medium for Coke for expanding its marketing. I'm very very excited about that. That's a bit of a theory on myself which I'm getting a lot of people from my business to get excited about. And that's why we want to do with you guys what we are doing. That's behind that. That's fantastic. How often do you get a chance to be pioneering something like that. So, a brand that is 120 years old, we're breaking new frontiers into how we are marketing that product. So, what motivates me is achievement. I really like to achieve. Q8> What is your career objectives? Long term. A> I actually don't know. I had a plan to do what I'm doing at the moment at the age of 35. And I did at the age of 33. I want to run a business in a country on my own. So I also need to be couple of hours flight away. I did that for the first time in New Zealand when I was 33. I don't want to become the next CEO of the Coca Cola company. That's not necessarily ambition of mine. Because you are going to have to give up more than I already do. I'm already not seeing enough of my friends. In order to do that, I'm afraid that I'll have to give up a lot more than what I'm currently prepared to give up. I want to have a relatively balanced life. I just saw our CEO worldwide and the man is completely absorbed by Coca Cola 24 hours a day. So, I don't know. I quite like to think and a lot of my friends will know is that at the age of 45, I'm gonna stop it all. I'm going to retire somewhere and do something. Well, no I could probably never retire, there's too much risks for that. So I'll go dear farm or buy an olive farm in Canada and live with my family. I'll do something very different. None of the office, none of the business, not with 12 million people around me in a city like Seoul. Q9> Can you recommend any of your favorite readings? A> I guess the best one that I read, there's actually two. One is Harvard Business Review, I really like that on a monthly basis. On weekly base, I read the Economist. It's real news. Those are the two that I think are the best quality. But I also like a bit of sensation. So I also read New Week, The Business Week, Forture, Asian Economic(?) Review as magazines. That's a bit more sensational, more photographic, big, big sensational stories. [American Election 에 대한 생각] Newspapers, I read Korean Herald, Asian WallStreet Journal. Q9> Are there any mentors? A> There's two people. One is a woman boss that I had in UNILEVER. She was my boss for about an year and a half or two. She became really good friends with me. She inspired me in a sense that, she tried to have me slow down. When I left UNILEVER, she gave me a print out which was framed. It was about 'What's important is not how much you achieve for yourself, but how much you achieve for the others.' And it made me think for the first time about what is really valuable. What is really achievement all about. So, she made me think about more than just my own personal need to do things and to get things done. So, I really like that. I still have that frame in my house. I still look at it every now and then. We talk about every month or so. On the mobile phone, wherever she's in the world, wherever I'm in the world. We'll just talk and go through business. My wife hates it. But it's really cool and she's the only person that I can do that with. The other person is she's still very much a mentor. Whenever I got a thing I want to think about or get someone to give me some feedback on, because I haven't worked it out as it should be. Another person is my boss in Indonesia, he is now the CFO in Japan. But he was the managing director in Indonesia. John Murphy, he is an Irish man. He has had a lot of belief in me and I couldn't figure out how he'd dare to do that. I was 28 when I arrived in Indonesia. And he had a lot of belief in me and promoted me throughtout my course in Indonesia. And then they got me to go to New Zealand as a managing director there. I still remember what he said to me when I went to New Zealand. He said to me "One of the things that you'll have to do very quickly when you arrive in New Zealand is to get yourself an arthur". Which is my name. And what he meant was is to surround yourself with some strong people who will challenge you, a strong people who will do initiate things, a strong management group of people. Instead of what happens to people who go for the first time the general management role is they point weak people. Because they are bit concerned about having to be the general manager for the first time. He's still a coach and I talk to him about every two to three months. Live in Tokyo. I have to go to Tokoy quite a bit. And because he's there. He's a good mentor. Q10> What did you want to learn from them? A> John Murphy is more of a business coach to me. Whereas Karen is more of a friend. She's got this amazing one thing. When I was in Indonesia and had no kids. We used to call each other out at around 7 or 7:30 or so. How are you doing, what's up, ... And usually we would see each other at 8:30 ~ 9 in a particular restaurant, we'll have dinner and go home. Until we had kids. .... She now has four children, she has a full-time job, she is a sales director of UNILEVER in Holland, she's got a big job. She tought me how to balance things between family life and work. She's probably responsible for the fact that I'm at home everynight at 6:30 ~ 6:45. Q11> How do you learn languages? A> Different things work for different people. What doesn't work for me is to sit in a room with a teacher an hour a day for two hours a week to do that for ... that doesn't work for me. I tried it when I arrived at Indonesia. I did that in the morning. That didn't work. Then I tried lunch. Didn't work either. I tried to have the teacher come in the car with me. The driver will drive and I can talk to the ... that didn't work either. So I tried the crash course which I'm going to do here as well. Intensive, immersion in a language is the only thing that works for me. I learned Swedish by doing that. Because we moved to Sweden. I went to Swedish school, I was 14 years old. Got to Swedish class, everybody speaks Swedish, and the teacher speaks Swedish, and I was sitting there. You have to learn, and you do, and you can. Because you are immersing yourself. Indonesia same thing. And hopefully be the same thing here. For the first time, I'm learning a none-latin based language. Except for Greek. I had Greek in school. Greek you don't speak, you only read and write. So, it would be the first time that I am going to have to converse what is truly Marsian to me at the moment. It's like a language from Mars. Yesterday, I did a video for our sales force. We have this thing on Friday for 1,500 people for all of our sales force. I did this video, it starts as "Coca Cola agent 여러분", then I had my speech in English. And at the end I had 5 sentences in Korean. I can remember one. Which I had this dark-glasses on. Hands on table and say "건투를 빕니다". (laugh) Total Immersion. You have to learn a language by focusing on it. I'm doing this two weeks, 8 hours a day, starts at 7:00 in the morning. It's three teachers on me. Three people on one. I have breakfasts with them. I have lunch with them. They will not speak a word of English. So for two weeks, 8 hours a day, I will have only Korean. All of it is conversation. And apparently, you come out, even with Korean, you come out being able to have a basic conversation. And there you can then learn, then move on. My aspiration is not to be able to jab(?) this sort of conversation in Korean. I will never be able to do that. I'm too busy for that. I don't need to do that. So, that's not gonna happen. What I do want to do is to be able to have a conversation in street, have a conversation in a restaurant, have a basic conversation with my sales force, be able to do a video in Korean. I want to be able to just do that without having to be a major ordeal. It was five sentences yesterday, I do practice for 15 minutes.
한국 뮤지컬은 남경주와 함께 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존재는 뮤지컬 계에서 특별하다. 남경주가 출연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뮤지컬을 보는 관객도 있을 정도다. 64년생인 그는 1982년 데뷔하여 가스펠, 아가씨와 건달들, 웨스트사이드스토리, 레미제라블, 그리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포기와 베스, 사랑은 비를 타고, 브로드웨이 42번가, 쇼 코메디, 남자 넌센스, 갬블러, 태풍, 그리고 페퍼민트 등에 출연했으며, 현재 King & I의 시암의 왕 역을 맡아 LG Art Center에서 공연 중이다. 한국 뮤지컬을 이끌어나가는 리더, 남경주씨를 2003년 12월에 MS가 만나보았다. 리더라는 단어가 아직 낯설다는 남경주. 그는 pioneer라 불리기 원한다. 자신은 아직 배우는 중이라는 겸손한 말과 함께…… Q: 한국 뮤지컬 계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계십니다. 정상이라는 자리는 명예롭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도 있으실 텐데요. 자신은 어떤 리더라고 생각하십니까? 뮤지컬 계의 발전을 위해서 숙련된 배우로서, 선배로서, 또 연출자로서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십니까? A: 나는 뮤지컬에 Vision이 있어요, 그러나 나 혼자 하는 일은 아닙니다. 내게 뮤지컬이 가장 즐거운 이유는 인생이란 것에 대해 전반적으로 배우기 때문이지요. 뮤지컬에는 삶이 담겨 있어요. 배운 것을 무대에서 실험해보고 희열을 느끼지요. 연습량은 절대적이지요. 연습을 많이 하면 그만큼 내가 연기하는 인물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집중도도 높아지지요. 훌륭한 배우는 항상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늘 인물에 대한 연구와 연기, 노래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지요. Q: 배우라는 특성상 여러 가지 인물을 연기하게 되는데 다양한 삶을 살아보는 것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과 그 장단점을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A: 단점은 없어요. 여러 인물의 삶을 살면서 다양한 관점이 생겨요. 대리경험이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내 자신을 정확히 분석, 표현할 수 있어요. 나를 알아가는 것은 곧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지요. 물론 배역에 몰입하다 보면 가상의 인물이 마치 나같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는 주위사람들이 알려주더라고요. 내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면은 많이 해결이 된 것 같아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10대, 20대에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자신의 능력과 열정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고, 30대에는 10-20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거지요. 그리고 40대에는 꽃을 피우고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필요해요. 물론 무엇을 이루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시기는 없지만, 인생의 황금기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황금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준비를 해야 해요. 자신의 적성을 찾아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 해야 하구요. 노력하는 힘의 원천은 신념이라고 생각해요. 신념은 또한 어려운 때를 이겨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되지요. 이러한 신념을 가지게 해 주신 분이 있어요. 대학 때 나를 가르치셨던 양정현 선생님 이신데, 연세가 많이 드신 지금도 연극무대에 서시며 자극을 주세요. 그 분은 인생의 선배님으로 또한 훌륭한 교육자로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시는 분이에요. 그분이 자신을 다른 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인접예술에 대해 배웠어요. 나를 정확하게 파악하면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인내심이 생기지요. 물론 나는 뮤지컬이 발전해 나갈 만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았고 그래서 이 분야에 내 열정과 삶을 바칠 수 있었지만 어려울 때는 내 나름대로의 판단보다는 그분께서 해주신 한마디가 큰 힘이 되더군요.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너 자신을 바쳐라” 라는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말씀이어요. 그러나 기대하지 않고 노력하는 자세가 없었다면 어려운 고비를 해쳐나가지 못했겠지요. Q: 평소 자기관리를 어떻게 하십니까? 특히 시간과 건강, 그리고 대인관계를 어떻게 MANAGE 하고 계십니까?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타입이십니까? A: 건강한 신체는 건강한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먼저 정신이 건강해야 내 몸을 왜 아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또한 건강한 정신은 철학적인 바탕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예술이 왜 존재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하게 되더군요.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문화, 예술은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나 싶어요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깅을 하지요. 지금은 공연 중이라 역삼역 근처에서 살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공기가 나빠 뛰지 못했어요.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다시 시작할 계획이에요. 보통 하루에 5-8Km 정도 뛰어요. 배우는 항상 standard 해야 하는 것 알아요? 내가 분장을 해서 살찌게 보일 수는 있지만 그 반대는 힘들거든요. 술과 담배도 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했었는데 자기관리를 위해서 끊었어요. Q: 1997년에 미국유학을 다녀오셨는데 유학을 결심한 이유와 유학을 통해 얻은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A: 유학의 동기는 일에 지쳐있는 데에서 비롯되었지요. 에너지가 고갈 되었다고 보면 될 거에요. 내가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겼어요.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자문하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자신을 한번쯤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국에서의 처음 6개월 동안은 신나게 놀았어요. 술도 마시고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요. Broadway 뮤지컬도 실컷 봤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몸을 쓰는 것이 그리워 지더군요. 그래서 섹스폰 레슨도 시작하고 댄스 클래스도 다니기 시작했어요. 노래 공부도 했는데 기술을 배운 것은 아니었고 노래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생각해요. 또한 새롭고 다양한 문화를 접한 것이 커다란 이득이었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를 얻었지만 유학생활을 통해 가장 많이 얻은 것은 자신에 대한 이해였지요. 내가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왜 일해야 하는 가? 등의 질문을 하며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졌었던 것이 한 단계 성장하는 바탕이 되었어요.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군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요. 아, 또한 유학생활 동안에 Off-Broadway 공연들을 많이 보았는데 그 무대 안팎에서 역동적인 젊은 사람들을 내 눈으로 확인하면서 Broadway의 뿌리가 이곳에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러면서 국내 창작 뮤지컬에 대한 꿈도 꾸게 되었지요. 뮤지컬이 서양에서 온 예술 활동이기 때문에 그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는 뮤지컬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힘들어요. 그래서 그런지 한국 사람으로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언젠가는 선배님, 선생님들과 함께 우리 뮤지컬 사업을 시작해보고 싶어요. **질문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계속된 이야기 문화는 사람들의 생각을 살찌우지요. TV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연극과 뮤지컬 에도 주제가 있지만 공연은 주제의 전달에 있어서 관객의 참여도가 크다고 할 수 있어요. 공연을 보러 공연장에 오는 것부터가 참여의 시작이지요. 공연을 감상하면서도 관객은 선택을 하는 겁니다. 무대 장치, 배우, 음악 등 많은 요소들 중에 무엇을 볼지 말이에요. 그런 선택을 통해 관객들은 한 작품을 봐도 주제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과 이해가 가능한 것이지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요. 생각을 다르게 하는 습관이 필요하고요. 우리는 지적 문화적 허영심을 버려야 해요. 얼마 전에 국립극장에 뮤지컬 시카고를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오리지널 공연팀 이라고 광고는 되었지만 사실은 2류팀 이었지요. 자막이 뜨긴 했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공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음악이 끝나면 박수 한번 치고 이런 식이었지요. 반면에 같은 작품이 한국 사람들에 의해서 공연된 적이 있는데 그때의 반응은 참 좋았거든요. 외국의 유명한 작품을 보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틀린 생각이에요. Q: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거라고 생각하십니까? A: 예술계통에 있는 사람들과 관객들 에게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공부를 더 해야지요. Workshop을 프로배우들과 해보고 싶습니다. 배우로서 나는 늘 장애인과도 같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재활 즉 공부가 필요한 것 이지요. 훈련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workshop을 다른 배우들로 하여금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꿈이에요. 그와의 만남을 녹음하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어쩌면 비디오에 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배우 남경주를 보았다.
[마케팅의 귀재] 2000년 지오다노 브랜드 하나로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한준석 사장.. 런칭 첫해인 94년 20억원 매출에 그쳤던 브랜드를 6년만에 100배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키워냈고, 2003년 산업정책연구원(IPS) 평가 여성캐쥬얼 부문 브랜드 순위 1위 한경소비자대상 수상, 스타마케팅을 가장 잘하는 브랜드 - 고소영, 정우성, 전지현 등..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에서 무역업을 배운 한 사장은 일신창투가 홍콩에 본사를 둔 지오다노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을때 영입돼 지오다노를 홍콩본사의 브랜드보다 수익을 많이 내는 브랜드로 키웠다. 중저가를 표방하면서도 깔끔한 환경에서 제품을 구입하려는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고 인테리어만은 최고급을 지향하는 정책을 취했고 백화점과 대리점을 동시에 공략하는 방식으로 현재 120개의 매장를 운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 사장의 치밀한 성격과 카리스마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지오다노 신화'는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한준석 대표님을 MentorSociety에서 만나보았다. 일시: 2003년 11월 18일 화요일 5시 장소: 지오다노 본사 회의실 참가자: 김하영, 박정윤, 이은호 커넥터: 안우성 #오늘날 젊은층의 진로 트렌드 1. 이공계 기피, 금융권 선호에 대해 사람들이 몰려가는 것은 결국 부가가치를 많이 내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예전에 공대 많이 갔던 시절이 있었고, 법대를 많이 가던 시절도 있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더 빠르고 효과적인 곳으로 가는 자연스런 시대적 조류 >> 이는 한국만의 분위기가 아니다. 세계적인 조류가 그러한 것이다. 2. 일찍이 자기 사업을 하고자 하는 욕구 Bill Gates같은 세계적인 성공 사례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장벽이 더 높은 듯 하다. 네트워크가 없이, 충분한 경험과 지식을 쌓지 않고 시작했을 때, 성공의 확률과 그 스케일이 크지 않다고 본다. ** 자기가 배운 것이 업계 내에서 꽤 경쟁력이 있다고 느껴져야만 사업을 할 준비가 되었다고 본다. 졸업을 한 직후의 창업은 99%이상 실패 #국내 기업 vs. 외국계 기업 오늘날 들어서 기업의 origin이 어디냐를 논하는 건 그리 의미가 없다. giordano의 경우, chairman은 Chinese-Canadian(회계전공자), 대주주는 미국계 펀드, 매출과 직원 비중이 최대인 쪽은 중국계이다. 그럼 origin을 어느 나라로 봐야 하는가? 미국 Toyota와 IBM Japan을 떠올려 보라. 어느 기업을 일본 기업이라 할 수 있을까? - 그것보다 어떤 일을 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가가 [20대 중반 ~ 30대 중반]까지는 중요하다! - - - Learning의 시기 #Roll Model 과 진로 경영학도 시절, 오늘날 김택진, 혹은 이건희 이상의 존재는 ‘김우중’씨 였다. 당시 국부창출의 유일한 수단이 의류 수출이었고, 단돈 500만원으로 시작하여 엄청난 해외수출 실적을 내어 재벌에 이른 김우중씨는 정치, 법조계를 지양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있어 roll model이었다. 꼭 ‘옷’을 팔고 싶다기 보다.. ‘김우중’처럼 되고 싶었고, 당시 대세가 수출/ 무역/ 상사 특히, 섬유 쪽이라 대우의류수출부문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데, 자신에게 선택의 initiative(주도권)가 얼마나 주어지냐라고 본다면 사실 그리 많지가 않다. 따라서, 대개는 어떠한 큰 흐름을 따라가게 되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기회를 만나게 된다. ‘상황’ 혹은 ‘기회’가 곧 주어지게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주어진 기회를 자신에게 더 ‘값지게’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생각처럼 선택의 폭이란 넓지 않다. giordano를 하게 된 것도 우연적인 계기였다. CEO를 꿈꾸는 이들에게 몇 가지 더 제언하자면, 해외 견문, 경험은 MUST/ 영어 잘하는 것은 더더욱 MUST!! (수 차례 강조한..) (#영어 MUST!! :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 이는 presentation, debating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생활영어로는 곤란) 처음 상사에 근무할 당시도 그런 쪽을 지향하는 분위기였다. 또한 ‘상사’에서는 물건을 ‘파는’ 쪽, ‘마케팅’이 main stream이라 볼 때, main stream에 있는 것이 일단은 좋을 것이라 여겼다. 특히 CEO가 되고 싶다면 main stream에 대한 이해가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끈기’, ‘회사를 정확하게 보는 눈’ 때문에 재무 출신이 CEO가 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뉴욕 지사 근무를 4년간 하게 되었고, 이때 미국 기업의 ‘시스템’을 경험하게 되어, 이는 현재 giordano 기업 운영의 밑거름이 되었다. 사실 그때 배움을 실천한 것인데 이후 국내 기업들에게는 giordano가 새롭고 혁신적으로 비춰졌었다. 이처럼 해외 기업 경험을 쌓아보는 것은 상당히 유익한데, 향후 대한민국 기업들의 CEO는 이처럼 경험을 갖춘 친구들이 많이 맡아서 기업 수준, 경영 문화를 upgrade해주길 바란다. #세계적 수준의 CEO로 거듭나려면.. MBA적 사고가 필요하다. -네트워크, 정경유착, 재벌 등으로 왜곡되어 있는 한국 시장에서는 투명하고 효율적인 체제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IMF 이후 free market으로 변해가는 체제에서 효율적, 합리적이고 투명한 경영자가 점점 경쟁력을 갖게 된다. -기업의 지배구조가 바뀐다. 소유주가 더 이상 경영자가 될 수 없다. 경쟁력 있는 ‘경영인’이 기업을 이끄는 시대가 되어간다. 실제로 아시아권 내에도 홍콩, 싱가폴 쪽의 CEO들은 굉장히 학구적이다. Harvard Business Review 같은 데에서 나오는 case들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실행에 옮겨보기도 하는 등 꾸준히 노력한다. 실제로 30대 초반 밖에 안된 이들도 많은데 정말 active, smart and intelligent함을 많이 느꼈다. #여성의 기회 여자분들도 활동을 했으면 좋겠고, 가능하면 전문직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사회는 남녀가 불평등하고 이는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여자가 강한 분야가 분명 있으므로 이를 잘 판단하여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giordano는 대부분 직원이 여성인데, 이는 패션 비즈니스 특성상 여성에게 더 적합하다고 본다. 여성 인력의 한가지 한계점을 지적하자면 : ‘직업에 대한 평생 마인드/ 직업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한다. 남성의 경우, 본능적으로 가장이 되어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는 반면, 여성은 그렇지 못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 집안 갈등, 육아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도태하는데, 물론 극복이 쉽지는 않지만 그러지 못하면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는 없다. 부분적으로 희생을 하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고 본다. #CEO의 리더쉽 CEO는 자기가 취하기 보단 자신에게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조급하게 도달하려고 하거나, 의사/변호사/회계사처럼 따는 자격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꼭 CEO 뿐만 아니라, 어떤 모임에서든 ‘리더’는 누군가를 leading하는 사람으로 respect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Motivation의 기술 : 1. Vision 2. 보상 이끌고자 하는 대상에게 위 둘을 적절히 제시해줘야 한다. Follower 입장에서는 이를 계속 확인하고자 하고, 이런 게 확인이 되면 respect를 보낸다. 나아가 리더는 ‘통찰력을 갖고 혁신을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진정한 ‘respect’가 나온다. 이러한 respect가 생겨나면 상당 시간 지속된다. -Idea 끌어내기 많이 들어주고, 많이 얘기하기 (지위고하 막론), creative thinking을 하도록 Incentive 부여 -이성과 감성의 균형 이성적 사고를 ‘폭발’시켜줄 감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들을 이성만 가지고 감화를 시킬 순 없다 ‘멋있다’, ‘존경한다’는 logical하게 설명이 안 되는 것과 같다. 감성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은 리더다. #giordano Korea의 위상 홍콩 기업(81년 창업), 총 12개국, 국내 런칭(94) 한국이 매출, 이익 수준에서 1위! #giordano의 success factor가 그럼 뭐냐? ‘신선함’ >> 경영학에서 말하는 ‘차별화’ : 현존하는 것들과는 다른 느낌(eland가 target이었음) success <- differentiation <- innovation <- creativeness 사실, 대중이 원하는 상품 자체는 ‘보편적’일 수 밖에 없다. 대신, 매장, 광고 등 다른 부분에서 ‘차별화’ 추구한 것이 주요하였다. #4P : Product/ Price/ Place/ Promotion 재정의! + Physical Environment(체험)/ People(creative의 원천)/ Process >>> giordano만의 business process 구현 특정 process로 성공하면, 이를 유사한 다른 분야로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 (giordano junior 등) #고객의 아이러니 고객을 알아야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고객이 원하는 게 뭔지 고객도 모른다.]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어떠한 트렌드가 자리잡을 지는 알 수가 없다. 고객 역시 미리 다음 시즌에 입고 싶은 옷을 그리고 있지 않는다. 필요할 때 매장에 나가 보면서 판단을 내린다. 따라서, 계속 무언가를 제시하는 것만이 방법 - 끊임없이 ‘이거는 어떠세요?’하고 확인해본다. 물론, business process가 다른 prada라면 독자적인 방향을 추구해도 시장이 따라온다. #선두가 된 이후의 차별화는? 차별화는 끊임없이 필요. 이제는 자신과의 차별화. 경쟁자로부터 고객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 언제나 숙제. 1등, 성공 후의 적은 경쟁자임과 동시에 내부적 ‘자만/ 게으름’이다. 이는 곧 창의성, 혁신을 떨어뜨리게 되고, 그러면 더 이상 차별화를 만들 수 없게 된다. #삶의 균형 가족 중요.. 미국 생활 경험이 가치관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가족과 일의 균형이 중요(이성과 감성의 균형 만큼)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의 차이라고 보는데, 그런 면에서 한국은 아직 후진국이다. #부 부 역시 MUST!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시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 부가 MUST인 이유는 자신의 destination을 가기 위함 부를 destination을 생각하면 곤란.. 어디를 차를 타고 가고자 한다면, gas가 부. Gas를 destination으로 착각하지 말라.. 대신, 이를 중시 여기지 않으면 갈 수 가 없다. #Reputation 나이가 들수록 power보다는 reputation에 관심. Reputation은 innovation에서 나온다고 하면, giordano의 경우 대량 생산 의류 시장(Mass Merchandising Product)에 있어 그러한 혁신을 이루어 왔고, 그 파급 효과는 매출의 10배인 2조 수준이라 본다. 이처럼 innovation으로 인간을 이롭게 한다면 그에 만족한다. #about China 중국의 9/10은 국민소득 1,000\$, 1/10이 약 5~6,000\$ 중국을 생산지로 본다면 9/10로, 마켓으로 본다면 1/10 고려 중국 12억 인구가 마켓이라는 시각은 nonsense/ 중국이 소득수준이 1,000\$이니 시장이 없다는 것도 nonsense 중국이 오히려 자본주의, 시장경제적이고 또한 합리적, 지식의 깊이가 있다. 표현력이나 협상력 또한 탁월 앞으로 한/중/일 간이 공존 관계가 중요. 이득을 보면서 공존하는 게 바람직한 접근. 양쪽을 능가하려는 시각은 섣부른 자만 #기회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들기 항상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정말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겸허하게, 기회인 듯 보일 수 있는 유혹들에 잘 대처하고, 끈기있게 배움에 임한다면 가치있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 기사의 전문 혹은 부분에 대한 무단 전제 및 발췌를 금지합니다. 기사화 되지 않는다는 사전 동의하에 작성된 자료입니다. 네오위즈는 1999년 원클릭 서비스로 시작해 지난해 약 4백 억원의 매출을 이루고 올해는 약 9백억원대 매출액을 예상하게 되는 인터넷기업의 선두주자입니다. 이런 고속성장의 배경에는 2001년에 대표이사로 취임한 박진환 사장님이 있었습니다. Mentorsociety에서는 지난 10월 박진환 사장님과의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일시: 2003년 10월 22일 수요일 7시 장소: 삼성동 참가자: 김성우, 안우성, 김하영, 박정윤, 조혜민 커넥터: 한주훈 인터뷰 전에 저희가 가장 궁금했던 대략 2가지로 압축되었습니다. *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어떻게 CEO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을까 * 성공적인 IT기업 경영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러나 만난지 10분도 안되어 참가자 모두를 사로잡는 언변과 쾌활한 성격은 우리들의 의문에 대한 답이 "패기"와 "자신감"이라는 것을 짐작케 했습니다. 딱딱한 격식이란 찾을 수 없었고 음식과 술잔이 돌면서 어느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무려 4시간이 훌쩍 흘러버렸습니다. 자유로웠던 그때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내용은 문어체로 정리했습니다.
박진환 사장님의 story 요약 1972년 출생. 울산 학성고 재학 중 큰 사건(?)을 겪은 이후 자신만이 정학 처분에서 제외된 것을 계기로 삼아 학업에 매진, 서울대에 합격했으나 1지망은 법학과(당시에는 남자라면 법학과!), 경영학과는 2지망이었음. 5년 간의 대학 생활을 마치고 즐겁게 군입대를 기다리던 중 친구의 제의로 병역특례를 시작. ㈜넥슨에 근무하면서 초창기의 인터넷 사업을 주도. 그후 네오위즈의 전략기획 본부장을 거쳐 2001년 네오위즈 대표이사로 취임. 경영자로서의 길 Q(김성우): 아바타 유료화, 세이게임 출범, 피망 런칭에 이르기까지 네오위즈가 걸어온 길에 있어서 중요한 시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경영자로서 결단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매우 잘 준비된 질문) A: 이 친구 상당히 학구적인 친구로구먼(하하). 아바타는 나와 별로 관계가 없지만 세이게임을 만들기까지는 많은 사연이 있었지. 결정 자체는 쉬웠지만 그것을 경영진에게 설득시키기가 어려웠어.
당시 한게임, 넷마블 등 웹게임의 절대강자가 있었고 경쟁도 매우 치열한 분야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은 "너무 늦다"라는 것이 지배적이었지. 그런데 나로서는 게임 말고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낼 방법은 없다... 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거든. 그래서 "사업이 실패할 경우 투자금액 만큼 백의종군 하겠다"라는 말로 사람들을 설득시켰어. 그런 자신감 때문에 일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2002년 5월부터 시작된 투자는 성과가 나오지 않아 초조했지. 하지만 10월 부터 좋은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피망 같은 경우는 좀 달랐어. 세이게임의 공지사항을 세이게임에 띄우지 못할 만큼 둘 사이는 엄연히 다른 분야였기 때문에 게임분야를 독립시켜야 한다는 판단을 했지만 세이게임 때와 같은 자신감은 없었어. 정말 그 문제로 한 달 동안 고민했어. 하지만 실패한다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성찰은 남기겠다, 그리고 매출을 2 배 성장시킬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이야기 해 달라라는 말로 투자를 결정하기에 이러렀어. 현재로서는 투입된 100억의 마케팅비용에 대한 논란은 많지만 결과를 기다리겠다. 아직은 진행중이니까.
Q(안우성): 그런 중요한 결정을 하실 때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단을 내리십니까? A: 나란 인간은 혼자서 나만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가장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과 그냥 이야기를 나눠. 그 때는 내 안에서 이미 결정을 내린 경우가 많지만 그 사람들이 결정해주는 대로 사는 경우도 있어.
드라마 <왕과 비>에서 한명회가 수양대군에게 천하를 얻고 싶습니까라고 묻지. 한명회는 "제가 천하를 드릴테니 천하를 얻고 나서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저를 내치지는 마십시요. 유방이 천하를 얻은 이유는 자방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이야기 하거든. 그 장면을 같이 보던 친구와 서로 유방과 자방으로 부를 만큼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야. 그 사람 만큼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는 것 같아. 그런 사람이 있고 없고는 아주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이 분명해. 나는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더 있다는게 정말 뿌듯할 때가 많아.
Q(안우성): 전문경영인이 되기 위해서 떠나는 해외유학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A: 차후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 나에게는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내 안의 거울을 들여다 보았을 때 이유가 있어야 하거든. MBA 갔다 온 친구들이 영어 배우고 골프 치러 간다는 말은 우스개 소리가 아니야. 더군다나 그들이 MBA를 취득했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은 요즘에는 아무 것도 없지.
만약 어떤이가 유학을 떠난다면 반드시 자비로 갔다와야 한다고 생각해. 자기 돈으로 가는 친구와 스폰서십으로 갔다온 친구들은 정말 많은 차이가 있거든. 뭔가 차 오는 느낌과 비어 오는 느낌이랄까. 전자에 해당하는 친구들은 부딪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더라고.
그런 취지에서 네오위즈도 직원을 유학 보내 주거나 하진 않을 거야. 설사 그런 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어떤 조건을 달지는 않아. 보낸 사람을 다시 불러올 만한 자신이 없다면 그런 제도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
Q(김성우): 네오위즈의 채용과정은 타기업과 비교해 볼 때 무척 까다롭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질문자 자신이 실제 경험자). 인재에 관한 철학은 무엇인지요? A: 첫째, 세상에 원래 가치 있는 일은 없다. 사람은 자기의 일을 스스로 가치 있게 만들어 나가는거라고 생각해. 허드렛일을 한다고 해서 자신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원하지 않아. 청소를 하더라도 그 일을 빛나게 하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거든. 그런 사람의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해.
둘째,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해. 지금의 인터넷사업은 말 그대로 전쟁터이기 때문에 네오위즈로서는 사회초년생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만한 여유가 없어. 그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스스로 돌파하고 스스로 성장할 수 밖에 없지.
이런 사람은 정말 사절이야.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와 자신의 실제 능력이 심하게 차이 나는 사람. 물론 실제 능력이 더 뛰어나면 좋지만 자신에 대한 평가만 앞설 뿐 실제 능력이 못따라 가는 사람은 그걸 깨닫는 순간 원래의 능력 조차 발휘하지 못하거든. 서울대, 연고대, 포항공대, 카이스트 등의 출신이 그런 경우가 많으니 조심해야 해.
Q(안우성): 현재 주요 IT기업의 대표는 창업 CEO, 공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박사장님은 전혀 다른 경우입니다. 원래 CEO를 목표로 하셨나요? A: CEO라는 것이 하고 싶었을까(하하). 그런 생각은 없었지만 뭘 하면 내가 제일 잘할까 라는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지금의 내 역할을 찾게 된 것 같아. 내가 기쁘게 할 수 있는 것, 재미있는 것을 찾았어. 하지만 처음에 내가 CEO가 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뭐하는 놈일까" 부터 시작해서 "네오위즈도 이제 끝났구나"까지 다양했지(주로 비관적). 세이게임이나 피망 같은 계기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걱정되기도 해.
스스로는 체질 자체가 CEO에 맞는 것 같아. 건강 검진을 해보니 나이는 31세지만 스트레스로 인해 몸상태는 45세라더군. 보통사람은 견디지 못했겠지만 나니까 그런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 부모님께 감사해야지. 또한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룹의 리더로서 무엇인가를 동물적으로 포착해내는 능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해.
하지만 네오위즈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아니라 각 부서의 실장님들 덕분이지. 내가 잘 했던 것은 어떤 사람에게 믿고 맡기는 일이었어. 다 잘할 필요 있나.
삶의 모습 Q(김성우): 담배를 많이 피우시는군요. 하루에 얼마를 피세요? A: 2갑 정도. 참고로 아셈빌딩(네오위즈 본사)은 금연빌딩이지만 내 방은 흡연구역이야.
Q(김성우): 여가시간은 어떻게 활용하세요? 그리고 업무 후에는 주로 어떤 약속이 잡혀 있으신가요.
A: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영화를 많이 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거의 잠을 자기 때문에 많이 보지는 않지. 사우나, 인라인을 좋아하고. 약속 중에는 업무차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많지만 공공기관의 어르신이나 원로분들과 만나기도 해. 의지와 관계 없는 약속이긴 하지만 일종의 사회적 책임이랄까.
Q(안우성): 아직 미혼이신데 뚜렷한 이성관이 있으십니까.
A: 내가 전화를 안해줘도 마음 상하지 않는 여자를 원해. 그럼 혼자 살아라 라는 말을 듣지(하하). 이성관계에서 나는 최선을 다 해도 절대적인 기준에는 못미치더라고. 자기 생각을 하루에 몇 번 하는가 등의 질문에도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상심해 버리고. 아버님이 올해 환갑이셔서 선물로 결혼을 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으니 최선을 다 해야지.
Q(김성우):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입니까.
A: (단호하게)영화감독. 글을 못쓰기 때문에 감독으로서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제작자로서의 길을 걸을거야. 어떤 영화냐 하면, 쉰들러 리스트와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 유대인의 핍박받는 모습이 전세계인의 심금을 울렸지만 1930년대의 우리 선조들은 그보다 더 심한 핍박을 받았는 걸. 그들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서 세상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싶어.
후배들에게 Q(안우성): 부에 대한 사장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A: 단순해. 나는 오늘 당장 공사판을 나간다 해도 그것이 내가 처한 현실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어. 당장 내가 실업자가 된다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할까? 빌붙어 살아도 돼.
돈이 많다고 하루에 4끼를 먹을 수 있을까. 돈이란 것은 필요할 때 쓸 수 잇을 만큼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 나는 항상 그렇게 살아왔어. 대학교 때 과외도 한 번 안했지.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와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져. 국제금융계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넥타이를 누가 디자인했는냐, 전세계에서 단 하나 뿐인 것이냐 하는 것들이야. 항공기 퍼스트 클래스, 기사가 딸린 리무진 등 외부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그 친구에게는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아니야. 현재 내 월급도 한 달 안에 다 못써.
영화 는 월스트리트에 종사하는 금융인의 타락을 다룬 영화다. 영화 초반에는 회사 중역들끼리 서로의 명함이 얼마나 좋은 재질로 만들어져 있느냐로 경쟁하는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름을 금으로 장식한 명함이 이기는 듯 했으나 워터마크(암호화 기술)를 프린트한 명함이 승리를 차지한다. - 작성자 주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이것이거든. 나를 위해, 주위 사람을 위해 얼마나 의미 있게 쓰느냐가 내 관심사야. 그런 면에서 한국에는 돈에 대한 제대로된 교육이 부족한 것 같아. 한국의 부자는 자식에게 주는 가장 좋은 생일 선물로 외제차를 고르지만 미국의 부자는 벅셔헤더웨이의 주식을 선택해. (BERKSHIRE HATHAWAY는 주가가 올라도 액면분할 하지 않기 때문에 주당 1억원 가량의 가치를 가진다. 작성자 주) 그 회사의 주주총회에 보내서 부자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쓰는 지를 교육시키지.
제발 부탁인데, 돈을 따라 움직이지마. 너희들은 학원강사를 해도 먹고 살 수는 있어. 돈을 따라가는 순간 결코 돈은 너희를 위해 움직이지 않아. 자신이 하는 일이 돈을 따라오게 만들기를 바래.
Q(안우성): 마지막으로 CEO가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A: CEO가 되려는 사람에게는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 "너는 네가 바보인 것을 아는가". CEO가 되려면 바보가 되야 한다는게 내 지론이야. 대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돼. 똑똑한 사람의 특징은 남 이야기를 잘 안듣는 다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CEO의 자격이 없어. (김성우): 원래 부터 남의 말을 경청하셨나요. 원래의 내 스타일은 그런 것이 아니었어. 학교 다닐 때는 정말 송강호 처럼 무대포 스타일로 사람들을 대했지. 그 때는 내 말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어. 학교를 5년 동안 다닐 만큼 내가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동아리(연극 동아리)에서는 수업을 듣는다고 동아리 활동을 빠지거나, 내가 하는 말을 안듣겠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지.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하나의 사건이 있었어. 그런 나를 견디다 못한 후배들이 자기를 때려도 좋으니 나더러 학교를 나오지 말래. 나로서는 정말 충격이었지. 그 사건 이후, 내 생각을 바꾸는데 6개월이 걸렸고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7년이 걸렸어. 그 사건이 나를 바꾼 거야. 이후로 나는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 되었어. CEO는 사람을 모으고, 사람의 말을 경청하며,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에 "바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어느덧 시간이 11시가 되었습니다. 그전까지 있었던 인터뷰 중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였지만 또한 가장 짧다고 느껴졌던 자리였습니다. 마지막 잔을 비운 다음 Mentorsociety의 회원과 박사장님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다음에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노라고 약속하면서 말이죠.
작성자 김성우
김범수 ㈜ NHN 공동대표님 Interview Date: 10/14/2003 Time: 7:30 -10 PM Place: NHN 사무실 근처 음식점 Connector: 허준 Participants: 김성우, 부아름나라, 안우성 Part 1. 꿈 Q)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계획하는 스타일이신지요? 살아오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는 6개월 후의 모습이다. 6개월을 기준 시점으로 내가 베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민한다. 1년, 2년은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6개월은 나의 환경, 노력했던 상황을 가지고 정확하진 않지만 예측이 가능하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큰 실수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사례 1. SDS에서의 업무 선택 - c가 아닌 윈도우 프로그래머를 선택 2. Unitel 지원 - pc통신의 유망성을 보고 사내인재공모에 지원 Q)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좋아하는 카피가 있다. 夢で終わらせなくて, 夢を終わらせなくて(꿈으로 끝내지 않고, 꿈을 끝내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을 꿈으로서 끝낸다. NHN과 나는 지금까지 잘해왔다. 이제 다시 꿈을 꿔야 할 때이다. 지금까지 와는 조금 다른 나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싶다. 나를 중심으로 하는 관계는 회사-나, 가족-나, 사회-나, 나의 내면-나 이렇게 4가지 관계가 있다. 인생에서의 성공은 이 4단계의 균형 있는 성공이라고 나름대로 정의를 했다. 사회와 나와의 관계는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재단을 만들고자 한다. 요즘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내 깊은 곳의 끌어내지 못한 나와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다. *추천도서 앨러건트 유니버스(브라이언 그린 저, 승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사이먼 싱 저, 영림카디널) Q) 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부는 포함되어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성공하면 부는 자연적으로 따라온다는 개념이다. 부만을 추구하는 것은 소탐대실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부에 초연해질 필요는 없다. 돈을 이만큼 벌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이걸 하면 따라오겠다고 생각해야 된다. Part 2. 창업 Q) 창업을 하게 된 이유는? A) 인생을 20대 이하는 준비하는 기간, 30대는 승부하는 기간, 40대는 안정을 찾는 기간으로 3단계로 나누었다. 목표를 세울 때 현재의 상황을 토대로 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20대에는 어떤 확고한 꿈이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앞서 말한 6개월 정도의 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했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삶을 사는 것이 크게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겐 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속칭 피라미드라고도 하는 다단계 판매가 그것이다. 다단계의 핵심은 많은 사람을 만나서 그들을 설득하고 또 그들과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렇듯 하루에도 2~3명을 만나고 설득해야 되는 상황에 직면하다 보니 성격에 대한 개조도 되고, 한곳만 보다가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1년 정도 다단계를 하다가 접고 회사로 돌아왔는데 그때부터 10년, 20년 후의 내 모습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선배들의 모습이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사업을 하자고 결정하게 된 것이다. Q) 아이템을 게임으로 선택한 이유는? 승부욕이 강한 편이다. 승부를 하는 것은 나를 긴장시키고 몰입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좋다. 그래서 스포츠는 다 좋아한다. 나의 모든 놀이 문화는 이러한 승부가 중심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유니텔에서 개최한 OX퀴즈 게임 방식의 이벤트에 8만 여명의 사용자가 한꺼번에 몰리는 걸 보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건희 회장의 IOC 위원 당선 축하 이벤트로 88올림픽을 기념하고자 88문제로 구성되었고 88문제를 모두 푼 사용자에게 경품을 지급했다. 당시 온라인 이벤트 사상 최고 동접으로 기사화되기도 했다. 통신에서는 정보 컨텐츠의 교류만을 생각하다 이를 계기로 처음으로 ‘게임’이라는 컨텐츠의 가능성을 느꼈다. 인터넷이 활성화될 것이고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보다 누구나 아는 고스톱, 바둑 등의 보드 게임이 훨씬 대중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Q) 현실과의 갭을 어떻게 극복했나? 가장 큰 것은 신념이었다. 앞서 말한 다단계에서의 1년간의 방황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이템에 대한 자신도 있었다. 운영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월급도 못 주는 상황이 생기자 돈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비즈니스를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생각한 것이 PC방 사업이다.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인에 사채자금까지 끌어들여 PC방을 오픈 했다. 당시 최대 규모의 PC방(80평/PC 50대)으로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주변에서 1000원을 받을 때 우리는 2000원을 받아도 항상 만원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한게임이라는 목적 사업과 PC방 운영, PC방 관리프로그램 판매, 프랜차이즈 등으로 운영자금을 버는 수익 사업을 병행하여 진행했다. 약 6개월 정도 운영자금을 번 후에는 승부할 시기라고 판단하여 목적사업인 한게임에 충실하고자 수익사업을 접었다. Part 3. 경영 Q) 리더로서의 자신을 평가하신다면? 여러 가지 타입의 리더가 있다. 이제 나의 리더십에 대해 스스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나는 말을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다만 사람들과 성실하게 관계를 맺어왔고 그렇게 생긴 신뢰가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 된 것 같다. 사업 초기 동료들은 내 말을 믿었던 게 아니고 나를 믿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름대로의 통찰력을 발휘한 것 같다. NHN과 관련된 2가지 큰 흐름인 합병과 유료화에서 도움이 되었다. 나는 유연한 스타일,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스타일, 인간 존엄의 가치를 믿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유능한 사람이 많아져 많이 편해졌다. 조조보다는 유비가 되자고 생각한다. Q) 숙고해야 할 때 어떻게 하시나요? 아침에 일어나서의 40분 정도의 시간을 즐긴다. 이 시간 동안 목욕탕에 물을 받아 놓고 샤워기를 틀어놓은 채 물을 맞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일상에서는 차분히 생각 할 시간이 없는데 어려운 문제나 심사 숙고해야 할 문제가 생길 때 항상 찾는 방법이다. 비즈니스에 있어서 독서는 간접경험일 뿐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명상이 가장 중요하다. 현상을 배제하고 본질을 찾아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큰 흐름 속에서 본질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Part 4. 후배들에게 주는 조언 Q) 사업을 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자질은? 판단과 분석이 정확해야 한다. 핵심적인 키 석세스 펙터를 찾아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수많은 현상 중에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정확한 판단을 추진력을 가지고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하나는 운이다. 카드게임에서 아무리 배팅을 잘해도 좋은 패가 뜨지 않으면 소용없듯이 사업에도 운이 따라야 한다. Q)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얼마나 도움이 되셨는지? 대학에서의 공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학에서는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숲은 못보고 나무 하나하나에 너무 신경을 쓰면서 보내게 된다. 하지만 지금 내가 경영서적을 한 권 읽는 것은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내가 놓친 부분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내가 했던 게 이래서 그런 거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 Q)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창업으로 성공할 확률은 백만 분의 1에 가까운 것 같다. 거의 우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100만분의 1의 확률에 자기 인생을 승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확률을 100배, 1000배 높이는 작업을 꾸준히 해야 한다. 확률을 높이기 위해 자기 투자가 제일 중요하다. 자기자신에 대한 투자뿐 아니라 자기와 관계된 사람에 대한 투자도 포함되어야 한다. 자기가 생각한 아이디어가 정말 뛰어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그 분야에서 5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5년 동안 꾸준히 자기 계발을 한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남들보다 앞서서 경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Ceo가 되려면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대할 때 헌신과 성실로 대하는 것, 그것은 사람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Q) 사회의 시작은 대기업이 좋을까? 규모는 작지만 멀티플레이어 역할을 할 수 잇는 중소기업이 좋을까? 대기업의 잘 정돈된 시스템을 배울 필요는 분명히 있다. 시스템이 돌아가는 걸 알아야 크게 생각할 수 있다. 나도 삼성에서 7년 동안 훈련 받은 게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시스템을 모르면 회사를 키워나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조그만 회사에서 많은 경험을 하는 것도 분명히 도움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두 회사를 다닐 수 없으니 팀웍을 통해 이러한 것을 해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 *) 결혼을 할 때 현상과 본질에 대해 잘 생각해봐야 한다. 결혼이 현상의 오류를 제일 범하기 쉬운 것이다. 정말 이 사람을 평생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확신이 들 때까지 던져라. 나는 내 인생에서 결혼이야말로 가장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Date: 10/28/2003
Questions 현재 BHP Korea, KAA를 포함하여, 모두 4개 회사의 대표로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각 비즈니스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자회사들을 설립하시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BHP Korea: 부동산 컨설팅이라고 하는 게 제일 간단한 설명이겠죠. Feasibility Study, Research, Corporate Service등을 다루는데, Corporate Service쪽이 가장 재미있고 많은 일들을 합니다. 그밖에 투자자문, PM/개발 대행의 영역도 다루고 있습니다. 자회사들을 설립하게 된 것은 특별히 다른 비즈니스를 해보겠다는 것보다, client의 편에서 생각해볼 때 필요에 의해서 하나씩 생겨났다고 보는 게 맞을 거 같군요. 투자유치 이후 건물은 꾸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기존의 FM(Facility Management)이 유지보수 정도의 측면이라면, 차후 임대와 매매를 위해서 자산인 빌딩은 자체의 가치를 더 키워줘야 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 독립적으로 회사를 만든 것이 KAA입니다. Lonestar와 함께 시작을 했고, accounting쪽이 강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또, 한국에서 부동산 업무를 하다 보니,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communication을 강화하고, 지역성도 잘 반영하고 하려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게 됐죠. ivalue라는 회사를 만들어 부동산 분야의 업무를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는 업무 자체 외에도 각종 정보교류의 장이 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BHP에서 관리하는 빌딩에 있는 고급 인력들을 위한 커뮤니티도 가능하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라 segment marketing을 위해서도 좋은 community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AIM이란 회사는 특정 투자자를 위해 전담 팀을 구성해주는 것이죠. 일종의 TF 팀처럼 해서, 투자자가 원하는 대상을 Targeting하는 등의 일을 합니다. 결론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서비스와 회사 설립의 근간은 결국 고객중심의 사고 입니다. user-friendly, client-oriented mind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고 봅니다. BHP Korea설립 이전에 기아그룹에서 부동산 업무를 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BHP Korea를 설립하시게 되셨습니까? 정부와 민간기업을 다 경험해본 상태에서, 직접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당시 집안 사정이 좀 있었습니다. 부친께서 건강이 좀 안 좋아지셨기 때문에, 하시던 중소기업을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당시는 전혀 다른 분야라 여러 고민을 했었습니다. 기존에 쌓아왔던 name value를 다 잃은 상태로는 새로운 비지니스를 하기 힘들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외국의 설계사무소와 BHP의 agent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조그맣게 시작할 때는 이와 같은 Network가 필요하다는 것과, 많은 이들에게 묻고 의견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죠. 부동산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데 어떤 지식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본인은 전문가라기 보다 지휘자라고 생각합니다. 부동산이라는 분야 자체가 전문적 분야라기보다 모든 산업의 기초 분야이기도 하니깐요. 대신 모든 분야에 대한 어느 정도 이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운영자가 되고자 할 때, 지금 단계에서는 우선 3~5년 정도는 하나의 전문분야를 닦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Client의 입장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상 해답은 상대방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경청'하는 자세가 도움이 되겠죠. 그 이후, 객관적 판단력과 research, 네트워킹 등의 역량이 필요하겠죠. 학교에서 얻은 지식과, 실무에서 얻은 지식을 비교해 볼 때, 학교의 지식이 실제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또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중점을 두고 얻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을 들 수 있습니까? 글쎄요. 저는 학교 공부와 실무가 자연스럽게 이어져온 것 같아서 구분해서 생각되진 않는군요. 건축을 할 때부터 환경에 관심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도시계획으로 이어지고, 도시를 다루다 보면 경제성을 고려하게 되었죠. 그 결과 오늘 부동산을 하게 됐다고 봅니다. 학교 교육에 대해서 얘기 드리자면, 한국 학생들이 우수한 자질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획일적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는, 창의성,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자세, 자신감 등을 얻으면 충분하지 않나 생각되고, 이런 맥락에서 필요하다면 적어도 1년 이상의 유학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건축과 도시 설계를 공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일을 하는데 있어, MRED와 같은 부동산 전문 학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가지 길 중의 하나겠죠.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쟁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이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게 기업을 통한 경력이 될 수도 있고, 자격이 될 수도 있겠죠. 무엇이 됐든, 기본이 되는 철학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격을 추구하더라고 왜 추구하는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가 분명해야겠죠. 저도 CFA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다가, 실무에서 재무지식을 습득할 필요를 느껴서 공부를 해봤습니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어땠는지 몰라도, 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내 일과 연관된다는 생각에 아주 재미있게 배웠던 기억이 나는군요. 보통 진로에 대해 얘기할 때, 자기가 경쟁력 있는 분야, 자기가 잘하는 분야, 그 다음에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가 무엇인지 세 가지로 나눠 이를 잘 파악하라고 합니다. 이 대표님의 경우, 어떤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다 같은 거 아닐까요. 굳이 얘기하자면,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죠. 계획하고 온 길은 아니지만, 아마 다시 20대로 돌아가더라도 부동산 분야를 할 겁니다. real estate분야를 위한 first job으로, 국내회사와 외국계 회사, 그리고 작은 조직과 큰 조직을 비교할 때 어떤 선택을 추천하시겠습니까? 운영자, 경영자가 되려면, 양쪽을 다 경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장기적인 Career전략을 세워두고 접근해야겠죠. 큰 조직에서 작은 조직으로의 이동은 어떨지 몰라도 그 반대의 경우는 그리 쉽지 않을 테니깐요. 지금까지 인생에서 큰 가르침을 받은 mentor나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특별히 한 사람을 고르긴 힘들군요. 완벽한 사람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으니깐요. 다양한 사람들의 성공 point을 보고 체득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 역시 새싹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얘기대로 아주 분위기 좋게 인터뷰를 잘 응해주셔서 좋았습니다. 단순히 외국에서 공부하셨기 때문에 좀더 open mind를 가졌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정리를 하면서 생각해보니 client 중심으로 보는 자세가 이미 몸에 배신 거란 생각도 드는군요. 상대가 누구든 배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멋진 오후였습니다. 1. 과감하게 만나라 2. 처음부터 지휘를 할 수는 없지만, 항상 지휘를 염두에 두어라.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지휘를 못하면 스스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3. 창의력을 가지고 즐길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즉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 4. 유학은 추천할만함. 학위자체보다는 1년 정도라도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즉 시스템을 보고 와라. MRED 역시 절대적으로 학위가 중요하지는 않다. 문제는 그게 정말 왜 필요한지이다. 그리고 기초마인드를 배워서 스스로 판단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5. 굳이 학위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뭘 했고, 뭘 할 수 있는지는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즉 학위를 따거나 실무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 아무것도 없이 자신감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싫어한다. resume를 잘 꾸며나가라 한국은 부동산 문화가 특이한 나라입니다. 즉 기회의 땅이자, 위험한 땅입니다. 불안정한 제도, 부패한 공무원 등으로 인해 위험이 높은 지역입니다.
김택진 ㈜ NCSOFT 대표님 Interview Date: 9/18/2003 Time: 8 -10 PM Place: NCSOFT 대표 집무실 Connector: 안우성 Participants: 김성우, 박정윤, 장재희 Before the meeting: 6시 10분쯤에 NCSOFT 사옥 근처에서 모여 식사하면서 만남을 준비하였음. Interview paper 보면서 질문내용 정리. Meeting: 1. Opening: 김택진 대표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심. 맞아주시면서 한 말씀 정리. What is Mentor Society? Impressed by the email It was very difficult to meet people with reputations. These days, there are many sources available, such as books, articles, and internet. Meeting professionals is a great learning experience. Interviews that Mr. Kim has done are not really true. 2. Q&A: 미리 준비된 질문들에 대한 답 Q: 실제로 평소 어떤 업무들을 주로 하시게 되나요? A: 원칙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인지 수 개념으로 내 밑에 7개 이상의 조직을 (부서를) 두지 않는다. 예전에는 직원수가 100명 정도였으므로 직접 모든 업무를 관할할 수 있었다. 특히 개발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직원수가 들어나서는 조직을 만들고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경영을 하면서 Relationship among blocks를 생각하게 된다. 직원수가 많이 늘어나고 나서 2,3차 relationship은 잘 구축되어있지 않다고 느껴져서 2003년도엔 NCSOFT의 management 교육에 신경을 쓰고 있다. 또한 보고서만으로는 회사의 사정을 잘 알 수 없으므로 자주 돌아다닌다. 내가 집무실 안에 있는 시간은 매우 적은 편이다. Q: 비전문경영인으로써 회사의 중요한 방향을 어떻게 결정하십니까? A: ‘CEO는 CEO가 되기 원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CEO가 된 이유는 할만한 사람이 없다고 시켜서 되었다. ‘CEO의 역할은 고객을 대변하는 것’이다. Understand customers and their needs! 고객에 대한 이해는 사업 방향을 결정하고 이는 making decisions로 이어진다. CEO는 고객을 대신해서 회사에 질문을 던져야 하며 훌륭한 CEO는 훌륭한 질문을 던지는 자이다. 또한 신뢰 없는 경영은 매우 힘이 든다. 만약 사업 파트너가 부족하다면 성장시켜 같이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 하는 사람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도 모른 척하는 경우도 많다. CEO가 필요한 세가지는 integrity, honesty, and fairness라고 생각한다. 이중 한가지라도 누락된다면 결코 올바른 경영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 이 세가지 원칙을 무시하고 성공한 경영자는 “사기꾼”이다. 또한 CEO는 틀린 것을 인정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flexible 한 사람이어야 한다. NCSOFT가 사회에 great question을 던질 수 있는 기업이 되기를 소망한다. Q: 병역특례를 하던 중 해외 연수를 다녀와서 인터넷 세상의 가능성을 엿보았다는 인터뷰 기사를 보았는데, 이후 유학이나 외국계기업 취업은 고려하지 않았나요? NCSOFT의 대표가 되시기 전에 개발자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있었다고 생각되는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어떻게 하여 그런 결정을 내리셨는지요? A: <고등학교부터 NCSOFT를 차리기 까지 과정> 고등학교 때 주변의 권유로 법대를 가려고 문과를 생각했으나 지원서 제출 바로 전날 이과로 전향했다. 이유는 잘하는 것만 하면 재미없기 때문이다. 서울대 전자과에 갔으나 (85학번) 취미로 좋아하던 컴퓨터를 정식 교과과정에서 배우지 않고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했다.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을 이때 많이 만났는데 이때 이찬진 등과 아래한글을 개발해서 세상에 내놓음. 약간 유명해졌다. 그러나 박사과정을 밟는 중 7년 열애를 하던 사람과 헤어졌는데 이 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어지고 심지어는 반도체공학 교수의 꿈을 접고 박사과정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박사과정을 포기하자 여러 군데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당시에는 현실도피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제의가 들어온 회사들 중에 해외근무가 가능한 곳을 선택했고 그곳이 현대였다. 해외근무지는 미국 보스톤이었고 가서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위해 수학공부와 미국에서 막 붐을 일으킨 internet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2년 후 한국에 귀국해서 결혼하고 현대에서 internet 연구를 맡았다. 일을 열심히 하고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100명을 거느리는 팀장이기도 했으며 매년 특진을 했다. 그런 전례가 거의 없었다. 그때는 새벽 2-3시까지 일하는 것은 보통이었다. 하지만 5시만 되면 에어컨이 꺼졌기 때문에 여름에는 반바지를 입고 회사에 출근했다. 비록 상사들이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당신들도 열대야에 양복입고 2-3시까지 근무해보라고 하면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나 얼마 후 현대의 경영적 위기로 지원이 끊겼다. 참고 다녀보려 했으나 1년 넘게 지원이 되지 않았고 더 연구를 하고 싶은 소망에 마음 맞는 몇몇이 회사를 나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 때부터 꿈꾸어오던 온라인 게임사업을 시작했다 (ERP쪽은 초기 수익을 마련하고자 잠시 시도했던 분야). 결국 NCSOFT는 내가 젊은 시절부터 꿈꾸어온 소망의 결실이며 SOFTWARE=ART란 생각을 가지고 지금까지 사업에 임했다. 온라인 게임사업은 무척 좋아하는 일이며 예술로 승화시키는 감동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리니지 등을 좋아해주는 고객들에게 매우 감사하다. Q: 지금까지 인생에서 큰 가르침을 받은 mentor나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A: Mentor는 사람이 아니라 종교였다.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 내 경우에는 성경이나 불교서적 등 자기성찰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가르침을 얻었다. 자기성찰은 매우 중요하다. 젊을 때, 대학생활 등은 무엇보다 그런 진지한 자기성찰, 깨달음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Q: 학교에서 얻는 지식과, 실무 경험에서 얻는 지식의 비중을 비교할 때, 학교에서 얻은 지식이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또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중점을 두고 얻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이 되겠습니까? A: 가장 중점을 두고 해야 할 것은 고민이다. 철저한 자기에 대한 고민을 하고 새로운 생각의 패턴을 창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부를 잘하고 과 수석을 하더라도 창의력이 낮은 경우가 많다. Relationship에 대해 생각하고 그 패턴을 읽어내며 ‘링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꾸준히 읽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며 지식을 얻으면서 머리의 재정비가 일어난 적이 4번 있다. 바로 양자이론, 상대성이론,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카오스 프랙탈 이론을 배웠을 때이다. ‘깨달음’과 아는 것은 다르다. 깨달았을 때 감동이 느껴진다. 자기성찰을 통해 또 깊이 생각함을 통해 기억들의 링크와 그 새로운 pattern을 발견하는 것이 창조/창의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은 위대한 곳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고 또 배움이 있기 때문이다. 배움에는 fact와 method 두 가지가 있는데 방법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창의와 응용력은 방법지식을 통해 발전된다. Don’t study things, but study how to MAKE things. Q: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 A: 예측을 하지 않는다. 흐르는 데로 내버려둔다. Q: 인생의 목표? A: 일인지 돈인지 명확하게 해야 한다. 돈에는 욕심이 없다. (일 욕심은 많은 것 같음) 일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매우 중요하다. 특별히 하는 운동은 없으나 소식으로 건강을 관리한다. 모자라는 것보다 과한 것이 훨씬 나쁘다 (잉여 영양은 곧 노화를 촉진시킬 뿐).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좋다. 욕심이 있다면 올바른 욕심을 가져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패를 하려면 장렬히 하는 것이 낫다.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쥐게 되면 거부증후군에 시달릴 수 있다. 매우 조심해야 한다. 인생의 목표를 확실히 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여자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삶 자체가 얼굴에 나타난다고 믿는다.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나는 주위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사는 것이 좋다. 우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은퇴하면 맛있는 우동집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 그때까지는 Software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game은 매개체) 감동을 이끌어내는 internet game을 만들 것 이다. 3. Ending 내가 누구인가?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살고 있을까? 내가 품고 있는 마음속의 소망은 무엇인가? 모임 자체가 너무 흥미롭고 또 대표님의 자유로운 분위기 리드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말씀을 들었다. 집무실의 분위기도 자유롭고 편안한 편이다. 집무실 한 벽면은 책장이었는데 수학, 과학 서적부터 만화책까지 다양한 책들이 꽂혀있었다. 독서 광이라 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만남 내내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고 매우 편안한 분이라 느껴졌다. 권위를 내세우거나 거드름을 피우는 것은 전혀 찾을 수 없었디. 오히려 자유롭고 젊으며 새로운 사고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었다. 돈을 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과 소망을 소중히 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해서 그런지 매우 즐거워 보였다. 단지 담배는 왜 그렇게 많이 피우시는지 궁금했는데, 스트레스가 많으신지 아님 습관인지... 한번의 만남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리하여 12월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 받았다. 우리모임 자체를 매우 훌륭하게 생각하셨고 생각과 목표를 공유하는 집단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게 말씀하셨다. 성공적인 첫 만남 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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